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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의 역사

사회심리학의 역사 초창기에서 연구 활동기까지

by 박co드 2023. 7. 25.

사회심리학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이러한 의문은 사회적 행동에 관한 사색이 플라톤과 같은 고대의 철학자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답변하기가 곤란하다. 따라서, 사회심리학의 역사적 연원들에 관한 완전한 모습을 제시하기는 곤란하고 복잡한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독립된 학문으로서 사회심리학의 대두로부터 현재까지의 발전과정들과 미래의 발전 방향에 관한 개략적인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심리학적 주제들에 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19세기까지는 발전되지 않았으므로 사회심리학은 1세기를 겨우 넘긴 매우 어린 학문 분야이다. 하지만, 최근에 사회심리학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일어나고 있고, 다수의 학자가 배출되고 있다. 

사회심리학의 초창기: 1880년대~1920년대

공식적인 행사를 갖고서 출발하는 학문 분야들은 드물다. 그 대신에, 대부분의 분야는 점증하는 숫자의 학자들이 특수한 주제들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기존의 주제들을 연구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개발함에 따라 서서히 발전한다. 과학 분야들에서 존중받고 있는 실험적 연구를 사용한 사회심리학의 최초 연구는 노만 트리플렛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개인들의 과업 수행(즉 낚시릴 감기)에 미치는 타인들의 존재 촉진적 영향을 연구하였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마르크스 링거만은 프랑스의 한 농업기술자로서, 트리플렛처럼 사람들의 과업 수행에 미치는 타인들의 영향을 연구했다. 하지만 트리플렛과는 다르게 그는 사람들이 흔히 타인들과 함께 과업을 수행할 때에 줄다리기와 같은 단순한 과업들에서 더 나쁘게 수행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링거만의 연구는 1880년대에 수행되었지만, 1913년까지 출간되지는 않았다. 

사회심리학의 수립에 대해서 개별적 논문보다도 교과서의 출간이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시기에 3개의 교과서가 출간되었다. 그것은 영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맥두걸과 두 명의 미국인인 에드워드 로즈와 플로이드 올포트에 의한 것이었다. 맥두걸은 본능들에 의해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려고 했으며, 로즈는 사회학자이었다. 올포트의 저서는 매우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 관점에 훨씬 더 가까웠다. 그의 저서는 사회적 동조, 안면 표정들에서 정서를 인식하는 능력 및 과업 수행에 대한 관중들의 영향과 같은 주제들에 관한 실제의 연구를 논의했다. 

본격적 연구 활동기: 1930년대~1950년대

사회심리학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사회심리학에 대해 개인적인 사회심리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극적인 영향을 준 것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였다. 히틀러의 집권과 부수되는 큰 혼란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폭력, 편견 및 인종 말살, 동조와 복종 및 그 밖의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과 행동들의 원인에 관한 사회심리학적 의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고 애쓰게끔 했다. 부가적으로, 1930년대에 유럽에서 살고 있었던 많은 사회심리학자가 미국으로 도피했으며, 이것이 미국에서 사회심리학이 급속하게 성장하게끔 만든 다수의 학자를 구성하게끔 도왔다. 이차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 사회심리학에 대한 관심의 폭발이 있었다. 

1930년대 말인 1939년에, 고든 올포트와 몇 명의 다른 사회심리학자들이 "사회문제들에 관한 심리학연구회"를 창설했으며, 사회에 대해 중요하고도 실제적인 기여를 행하고자 했다. 1936년에, 무자퍼 셰리프는 사회적 영향에 관한 획기적 연구를 출간했다. 그는 어렸을 적에 그리스 병사들의 집단들이 그의 친구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경험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그는 집단들이 그 멤버들에 대해서 줄 수 있는 강력한 영향에 관한 연구 즉, 사회규범의 형성이나 동조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의 연구는 사회심리학의 발전에 대해서 매우 중요했는데, 이것은 그의 연구가 동조와 사회적 영향과 같은 복잡한 과정들이 엄밀한 과학적 방식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혁신은 사회심리학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에 대한 초석이 되었다. 

사회심리학에 대한 다른 위대한 공헌자인 컬트 레빈이 1930년대 초에 독일에서 나치의 살육을 피해 미국에 이민했다. 그는 대담하고 창의적인 이론가인 동시에 응용연구자이었다. 그리하여, 사회심리학에 대해 다대한 공헌을 했으며, 많은 사회심리학자가 그에게 "사회심리학의 창설자"라는 영예를 부여한다. 이와 같은 그의 이론적 및 응용의 기여들을 고려할 때, 그가 주장했던 이론적 및 응용의 원리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로, 그는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가가 우리가 주위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고 해석하는가에 크게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상이한 사람들이 동일한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그들의 행동이 다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사회심리학 특히, 사회적 지각에서 계속 중요하다. 둘째로, 그는 행동이 개인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의 함수라고 주장했다. 내부와 외부 요인들이 모두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레인의 이러한 관점은 그 당시의 다른 주요 심리학적 패러다임들이나 과학적 관점들과 구분되는 것이었다. 예컨대, 정신분석 이론은 내부의 무의식적 동기들을 강조했고, 학습이론들은 외부의 보수들과 처벌을 강조했다. 레인의 입장은 오늘날 "상호작용 주의적 관점"이라고 알려진 것의 하나의 초기 버전이었다. 그의 접근은 성격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을 결합한다. 

셋째로, 그는 사회심리학 이론들이 중요한 실제적 문제들에 대해 응용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전쟁 동안에 전쟁 노력을 돕기 위해 자원들을 보존하게끔 설득하는 방법, 주부들의 경제적이고 영양적인 식사 습관들 즉, 내장 고기의 사용의 증진 방법 및 상이한 유형의 리더들 집단들의 작업효과와 같은 몇 개의 실제적 이슈들을 연구했다. 레인의 유산에 기초해서, 오늘날 응용사회 심리학이 광고, 기업, 교육, 환경보호, 건강, 법률, 정치, 공공정책, 종교 및 스포츠와 같은 분야들에서 번성하고 있다. 

이차세계대전 동안에, 많은 사회심리학자가 적의 선전으로부터 병사들을 보호하는 방법, 전쟁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들을 설득하는 방법, 여러 직위에 대해 장교들을 선발하는 방법 등의 실제적 이슈들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 정부를 위해 일했을 때, 응용사회 심리학에 대한 레인의 주장에 동조했다. 또한, 전쟁 중과 후에 사회심리학자들은 전쟁에서 파생되는 편견, 공격 및 동조의 현상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1950년대 동안에, 사회심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걸출한 연구자들의 주요 기여들이 있었으며, 이러한 괄목할 만한 활동들과 영향들로 인해서 사회심리학은 분명하고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